인간의 영혼은 몸과 다른 차원에 있다: 마음과 몸의 문제(mind-body problem), 마음과 몸의 이원론(mind-body dualism)
데카르트(
Fig. 1)는 기존의 지식체계를 뿌리부터 의심스럽게 보면서 합리적 사고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최초의 현대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1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여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사색하면서 보낸 많은 시간이 데카르트에게는 새로운 생각의 기회를 주었고, 이 습관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후 법률학 공부를 마치고 많은 경험을 얻기 위하여 군대에 자원 입대하게 된다. 혹독한 병영 환경 속에서 일련의 세 가지 꿈을 꾸게 되는데, 첫 번째 꿈은 학교 근처를 지나다가 강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리고 환영에게 협박을 당하는 꿈이었고, 두 번째 꿈은 엄청나게 큰 천둥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가 옆에 있는 촛불을 보고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드는 꿈이었다.
2 세 번째는, 탁자에 놓인 커다란 사전과 고대 라틴어 시집을 펼쳐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라는 시구를 읽으며 모르는 사나이와 대화를 나누는 꿈이었다. 데카르트는 이 세 가지 꿈을 통해 학문과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결론짓고 1621년 군대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후 주로 네덜란드에서 머물면서 많은 사상을 발표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우선 세상 대부분의 자연 현상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실험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부정하였다. 실험을 통해 무게가 다른 물건들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현상도 확인하였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무리라고 비난을 받은 갈릴레오의 처지를 듣고 이 관찰의 발표를 보류하였다. 결국 이 통찰력 있는 주장은 데카르트 사후 14년이 지나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데카르트의 공식적인 첫 저서는 ‘방법에 대한 담론(Discourse on Method, 1637)’이 된다. 이 저서에서 데카르트는, 과학적 사고는 필수적으로 확실하고 반박 불가능한 사실에 기초하여 설명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상상력의 산물이나 허구가 아니고 과연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하여 데카르트는 ‘내가 지금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만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의식의 개념을 정의할 때 현재까지도 개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통찰력 있는 주장임에 틀림없다.
데카르트를 훌륭한 과학자로 생각하게 되는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수학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사물의 진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이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였고 이는 뉴턴과 라이프니치의 미적분학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인 세계는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에서 그가 현대 과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과학자인 데카르트도 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며, 수학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면서 기계적인 작동기전을 갖는 세계를 창조한 것은 여전히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사상은 무신론과 상당히 근접한다는 판단을 받아 1660년에는 가톨릭교회로부터 그의 저서들이 금서로 판정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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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그러나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물질세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이라 생각하였다.
3 그리고,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의 영혼을 갖고 있으며 동물들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들은 마치 시계와 같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기계장치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동물의 영혼은 뇌실에 위치하며, 화학적 입자로 구성된 액체가 한편으로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한편으로는 신경 에너지로 사용된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영혼을 가진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단지 특수화된 화학적 입자에 의해 자동화된 반응과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결론적으로 의심하고, 확인하고 이해하며, 부정하고 의지를 갖는 것, 그리고 거절할 수 있고 상상하며 느낄 수 있어야만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 경우에만 마음을 갖고 있다고 규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영혼은 관찰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인간만이 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Fig. 2). 데카르트의 유명한 이원론 또는 ‘마음과 몸의 문제’가 여기에서 탄생하였다. 그에게 세상은 두 가지의 다른 물질, 즉 관찰 가능한 물질적인 것(동물의 영혼을 포함하여)과 관찰 불가능한 인간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데카르트의 마음-몸 이론은 마음과 몸의 작동 원리와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만이 영원불멸이고, 육체 없이도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며, 영혼은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다.
4 또한 다른 동물들은 단지 자동 기계처럼 움직이는 상태로, 심지어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다. 동물들이 통증으로 움츠리거나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은 자동화된 반응으로 진정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 믿음으로 인해 데카르트는 개와 같은 동물들을 마취 없이 산 채로 해부를 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비록 ‘반사’라는 말을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나, 처음으로 반사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으로 데카르트를 언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뜨거운 것이 닿아 발을 반사적으로 빼는 행동은 전형적인 자동화된 행동이며 뜨거운 것이 닿아 피부가 벗겨지면 몸 안의 섬세한 관이 당겨지고, 이로 인해 뇌실의 밸브가 열리며 이것이 발을 당기게 되는 행동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영혼의 존재는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흥미롭게도 데카르트가 사람과 동물이 같이 갖고 있다고 주장한 반사적인 행동들은 소화작용, 혈액순환, 성장, 호흡, 수면, 감각과 움직임 등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상, 기억, 감정 등과 같은 고차원 기능도 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라면 영혼과 육체의 교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이 작용을 하는 기관으로 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송과체(pineal gland)을 지적하였다(
Fig. 3).
5 그의 의견에 따르면 대부분의 뇌 구조물이 쌍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하여 송과체는 하나만 있고, 뇌실 및 뇌 중앙에 송과체가 위치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이 송과체를 빠르게 진동시키고 이로 인해 기계적인 작용을 하는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데카르트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현명한 엘리자베스 공주(Princess of Palatine, Bohemia)는 편지에서 이러한 이원론에 대하여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 우리의 몸과 긴밀하게 엮여 있음’을 강조하며 ‘마음-신체 이원론(mind-body dualism)’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외에도 덴마크의 신학자인 니콜라스 스테노는 대부분 동물의 송과체가 인간에 비하여 크다는 점을 들어 인간 영혼의 교류를 담당하는 송과체의 역할에 의문을 표시하였다. 그래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오랫동안 서양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1950년대 초반에 일련의 과학자들이 마음과 뇌가 하나임을 주장하는 ‘동일성 이론(identity theory)’을 주장할 때까지도 살아남았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 뇌라는 물질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가장 적절한 생존을 위해서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오면서, 몸은 뇌에 신호를 보내고 뇌는 이에 맞는 지시를 몸에 내리며, 다시 몸이 이에 반응하여 교정된 신호를 뇌에 보내는 식으로, 뇌(마음)의 형성에 있어서 몸은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해왔다. 인간의 사고와 마음은 몸이 이렇게 주위 환경과 소통하면서 진화한 결과물이고, 만일 몸과 마음의 이러한 상호 교류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정신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6 따라서 데카르트의 ‘나는 사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선언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사고한다’라고 바뀌어야 마땅하다.
데카르트는 1649년에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개인 교사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에 머물게 된다. 불행히도 스웨덴의 혹독한 날씨와 아침 5시부터 시작되는 개인 교습으로 인해 1650년에 폐렴에 걸려 이른 죽음을 맞게 되었다(수면은 면역 기능에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카르트의 위대성은 마음과 몸을 분리한 이원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물론 이것도 뛰어난 성찰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인 세계는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과 단지 특수화된 화학적 입자가 자동화된 반응과 행동을 만들 수 있는 ‘동물 영혼(animal spirit)’의 작동 기전을 생각해 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