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ia: Epilepsy Commun Search

CLOSE


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1(1); 2019 > Article
뇌 연구의 역사 1: 기원전 고대 뇌 연구의 역사

Abstract

Exploring the development of theories about the functions and structures of our nervous system yields insights into the mysteries of the brain, neurology, and neuropsychology. This article briefly summarizes the ancient history of neuroscience. Trepanation, performed since the Neolithic period, may have been intended to create an escape route for demons inflicting problems on humans , or as a surgical procedure to drain excess intracranial fluid in patients affected by trauma and epilepsy. The Edwin Smith Surgical Papyrus, found in Egypt, is believed to be related to Imhotep, the most preeminent healer in Egypt. It presents 48 cases of head injuries and describes the symptoms and signs of the patients in relation with the foci of brain injuries. Hippocrates, known as the “father of medicine,” represented the golden age of Greece, which witnessed an outpouring of many new thoughts and ideas. As focus shifted from God to humans, many philosophical approaches incorporated medicine. Hippocrates emphasized that diseases develop by natural causes, not God’s will. The Hippocratic Corpus encompasses 70 medical texts presumed to originate with Hippocrates and his followers. It also presents 42 real clinical cases. Systematic human dissections were started by Herophilus, the “father of anatomy,” who dissected hundreds of cadavers and live criminals. Herophilus, working with Erasistratus, also described the cerebrum, cerebellum, and ventricles of the brain. They distinguished between motor and sensory nerves. However, many still believed that human intelligence lay in the heart, and the controversy about the location of the human mind continued for many centuries.

뇌연구의 급격한 발전을 보면 경이로운 느낌마저 든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질병의 새로운 기전이 밝혀지고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래서 뇌와 우주가 우리 인류가 밝혀 내야 할 마지막 신세계라고들 한다. 이에, 과거 오랜 기간 동안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현재 뇌를 이해하고 있는 지점에 이르렀는지, 또 어떤 현자들이 그 길을 탐구하고, 진실을 밝혀내며 우리를 이끌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비단 흥미로운 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뇌연구의 여정을 나서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인공적 두개골 천공의 발견

베네딕트 교의 수도사이면서 고대 유물과 그리스 문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Bernard de Montfaucon (1655-1741)에 의해서 인공적인 천공이 있는 두개골이 처음 발견된 것은 1685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천공은 잊혀진 채로 있다가 1816년에 Alexander Francois Barbie (1797-1834)에 의해 다시 비슷한 형태의 두개골이 발견되고, 이 환자가 천공술을 받은 후 최소 수년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1 (천공술 후의 생존기간은 두개골의 치유 정도로 추정이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인공천공 두개골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신문 편집자인 Ephraim George Squire (1821-1888)가 “잉카 두개골”이라 불리는 인공 천공된 두개골을 뉴욕으로 가져와서 소개하고(Fig. 1),2,3 이 후 19세기 후반에 걸쳐 유럽 각국에서 비슷한 형태의 두개골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부터다.4 프랑스에서만 120개의 천공 두개골이 발견되었고5 이 중 상당 수는 신석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올라가, 이 두개골 중 오래된 것은 10,000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흥미롭게도 남미 페루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천공된 두개골이 10,000개 이상 발견되었다.6 이 두개골의 대부분은 2,000년 정도된 것으로 보이며, 어떤 것은 3,000년 이상 된 것도 있었다. 또한 상당수의 두개골은 시기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천공을 갖고 있어 한 번의 천공술 후에도 상당수의 환자들이 생존했음을 알 수 있다.5
두개골 천공을 소개하는 논문만 천 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정작 왜 이런 천공술이 필요했는 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유력한 가설 중 하나로는 두통, 뇌전증, 또는 정신장애를 치료하기 위하여 시행했다는 설이 있다. 즉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서 몸 안에 숨어 있는 악령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는 연기가 항상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악령도 길만 만들어주면 위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세기에도 아프리카나 태평양 연안에서는 뇌전증, 두통,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에 이런 시술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5
두개골 천공술에 대한 체계적인 가설로는 Paul Broca (1824-1880)와 Victor Horsley(1857-1916)의 설이 유명하다. 브로카 실어증으로 유명한 Broca는 두개골 천공이 악령이 빠져나가는 길을 만들어 주는 하나의 목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아에서는 양성 뇌전증이 흔하게 관찰되는데 이 때 사람들이 두개골 천공술을 시행하여 약령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여 이 치료를 시도하였으며, 마침 양성뇌전증이었던 환자는 특정 나이 때를 지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므로 치료가 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두개골 천공이 경막하 출혈 등에 적용된 고도의 뇌수술이었을 가능성도 제시하였다.7-9
저명한 신경학자로, 런던에 위치한 ‘신경과, 신경외과를 위한 국립병원’의 최초 교수로 임명되었던 Victor Horsley는 두개골 천공이 운동피질이나 함몰골절 주변에 시행된 경우가 흔하고 남성에게 시행된 경우가 여성에 비하여 4배 정도로 많으며, 왼쪽 두개골에 천공된 경우가 잦은 점(오른손 잡이가 무기로 공격을 하게 되면 왼쪽 부분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을 들어 전쟁 등의 과정에서 생기는 외상, 또는 외상 후 발생한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두개골 천공이 시행된 것으로 해석하였다.10-13 실제로 뇌전증 전문가였던 Horsley는 뇌전증 환자에서 직접 운동 피질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한 바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경학

고대 유물 거래상이자 이집트 전문가인 Edwin Smith(1822-1906)가 유명한 ‘수술 양피지(Surgical papyrus)’를 이집트 Luxor에서 구입하여 미국으로 가져온 것은 1862년이다. Smith는 이 양피지의 해석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1930년에 미국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James Breasted (1865-1935)가 10년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점차 그 정체가 알려지게 되었다(Fig. 2).14 이집트 문자의 해석에는 1799년에 발견된 Rosetta stone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 돌은 B.C. 19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집트 상형문자와 더불어, 후기 이집트 민중 문자, 그리고 그리스 어로 된 번역이 기록되어 있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하는데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수술 양피지에는 최소한 세 명의 저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의 저자는 이집트의 ‘구 왕조(Old Kingdom)’ 또는 ‘피라미드 시대 (3,500~2,500 B.C.)’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저자는 군대에서 근무한 외과의사로 추정되며, 창, 칼, 또는 기타 무기에 의한 상처에 특히 해박한 지식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외상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저술로 평가되며, 머리의 외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목, 팔, 다리 등 해부학적 순서를 따라 외상의 종류와 치료법을 기록했다. 저자들은 상처의 정도를 내가 고칠 수 있는 상처, 지켜 보아야 할 상처, 그리고 치료 불가 상처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치료법으로는 봉합, 붕대감기, 부목대기, 찜질이 추천되고 있고, 머리와 척추 외상에는 움직임 제한, 감염 예방을 위한 벌꿀 사용, 출혈을 멈추기 위한 날고기 사용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처음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집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모텝(Imhotep, Fig. 3: 기원전 28세기~26세기)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모텝은 기원전 2650년에서 2600년 사이에 고대 이집트에서 살았던 학자로서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를 섬기는 대 제사장이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역사상 건축사에 거론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15 생존 당시에는 파라오를 섬기는 수상이라는 사실을 비롯하여 몇 가지 기록만 있으나 사후 약 3,000년에 걸쳐 신격화 과정을 거치게 되며, 특히 사후 2,200년 이후부터 이모텝이 갖고 있었던 치유 능력이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파피루스에는 최초로 두개 구조물, 경막, 뇌 표면 구조, 뇌척수액, 두개강내 맥동 등이 기술되어 있다. 특히 48례의 두개 외상 증례가 기록되어 있는데, 파피루스의 내용으로 보아 저자들은 뇌 외상의 증상에 대하여 상당히 해박했음을 알 수 있다. 두개 외상 자리에 따른 신경 증상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눈과 손의 조화로운 운동의 장애, 그리고 두개 외상과 반대되는 쪽의 상 하지에 마비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개 외상이 있는 환자의 치료로 환자를 앉혀 놓는 것을 권하고 있다. 머리에 외상이 있는 환자를 앉혀 놓는 것이 치료라고 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두개내 외상후에 뇌압이 상승하는 것을 감안하면 나름 합리적인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증례들을 보면 의술을 시행하는 이집트인들은 뇌의 중요성을 상당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심장이 인간 정신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사람이 죽고 저승에 가게 되면 그 길목에서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 신이 심장 무게를 저울로 재서 그 사람이 저지른 조의 정도를 평가한다고 한다(이 때 무게가 가벼운 심장이 죄를 덜 저지른 사람의 심장이다. 마치 우리가 죄를 짓고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누비스 옆에는 새의 머리를 한 토트가 심장에게 질문을 하면서 그 답을 기록한다.16 미이라를 만들 때에도 간, 폐, 위와 창자는 각기 꺼내어 다른 용기에 보관하며 심장은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여 아예 미이라 몸 안에 남겨두지만 뇌는 코를 통하여 꺼내어서 버렸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여전히 인간 정신의 기원은 심장에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을 알 수 있다.17

고대 그리스 역사, 문화와 신경학

그리스 신화에는 의술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제우스(Zeus)의 아들인 아폴로(Apollo)는 의학의 신으로 받들어졌으며 반인반마, 즉 켄타우로스인 케이론(Chiron)을 가르친 스승이었고, 케이론은 아폴로로부터 치료와 관련된 마법의 노래와 다양한 약초에 대해서 배웠다. 케이론은 다시 아폴로와 님프 코로니스(Coronis) 사이에 난 아들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를 제자로 두어 의술을 전수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재능있는 의사가 되어 아픈 어린이들을 돌봤고, 그의 딸인 파나케이아(Panacea)는 치유와 재활의 비법을, 그의 다른 딸 히게이아(Hygieia)는 청결과 질병예방에, 그리고 아들인 텔레스포로스(Telesphoros)는 질병의 회복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내였던 에피오네(Epione)는 통증을 달래주었다. Asklepios의 치유술은 너무 뛰어나 마침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었다. 이 소식은 제우스의 귀에 들어가 결국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18
고대 그리스 역사는 초기 그리스, 그리스 황금기, 그리고 헬레니즘의 그리스로 나누며 유명한 히포크라테스(B.C. 466~377)는 그리스 황금기(B.C. 480~336)의 사람이다(Fig. 4).19-22 기원전 600~480년경부터 그리스인들은 신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쓰여진 서정시는 그 이전에 쓰인 호머의 서사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인간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보여준다. 비록 여전히 신에게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이제 그들은 애도하고, 슬퍼하고 소망할 줄 안다. 자연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자연계에서 인류의 지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면서 신에 대한 열망이 느슨해진 반면 인간에 대환 관심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의 한 지역이었던, 지금의 터키 해안지역인 이오니아에서 시작되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온 지역이며 동시에 다른 문화를 많이 접하여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위치였다. 서정시가 탄생한 곳도 이 곳이고 수학과 균형, 조화를 강조한 피타고라스(B.C 531~)가 태어난 곳도 이 지역이다. 그리스 자체가 각각의 독립된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던 것도 하나의 통치철학과 종교에 억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상을 개척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철학자 탈레스(B.C 635~543)도 이러한 사고의 개혁을 이끌었다. 그는 신이 지진이나 홍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의 섭리는 ‘물’에 근거한다고 믿었다. 그는 제자들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지 않고 그들만의 철학을 펼치도록 독려하였다. 이 때부터 탈레스 학파는 지구, 불, 공기, 물이 자연의 섭리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황금기가 도래한 기원전 5세기경, 철학자들의 관심은 우주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 그리스의 많은 지역에서 민주적 개혁이 일어났다.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유롭게 투표로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하였고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철학, 정치, 예술에서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났다. 의술에 있어서도 환자들은 자신이 받는 치료 방법이나 치료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의사들 또한 신의 뜻으로 모든 것을 귀결시키기 보다 자신이 행한 치료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분위기였다.
히포크라테스(B.C. 460~370)는 바로 이 그리스 황금기, 페리클레스 시대의 사람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최초로 질병을 미신이나 신들의 행위와는 관련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히포크라테스의 업적으로 잘 알려진 ‘Hippocratic Corpus(히포크라테스 전집)’은 히포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70개의 의학 기록물이다(Fig. 4).19-22 여러 저자가 섞여 있어 실제로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쓴 내용이 어느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 전집은 교과서, 강의, 연구, 그리고 기타 노트와 철학적 사고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내용을 갖고 있다. 특히 42개의 실제 증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전집은 어떻게 하면 질병을 예방하고 진단하며 치료할 수 있는 가를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원인과 치료가 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특히 여기에 뇌가 마음의 기원임을 적시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또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4체액설을 제시하였다.19-22 4체액은 혈액, 황색 즙(yellow bile), 흑색 즙(black bile), 그리고 담즙(phlegm)으로 구성되며 각기 온도, 습도, 성격 등에 차이가 있고(Table 1), 이 체액 들간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설명하였다. 뇌 손상에도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는데, 뇌 손상이 다양한 형태의 운동 장애와 마비를 일으키며, 뇌전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뇌 운동 신경의 교차 현상을 알고 있어서 예를 들어, 왼쪽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이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 발작은 오른쪽 팔, 다리 등에서 나타남을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뇌전증은 신, 악마나 나쁜 영혼의 영향이 아니고 뇌 질환의 일종으로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23 동시에 이 뇌전증이 가족력을 가질 수 있음도 알고 있었고(현재의 특발성 뇌전증에 해당), 뇌로 가는 혈관 어딘가가 막혀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였다(물론 이는 상당히 진실에서 벗어난 추론이기는 하지만 뇌졸중이 뇌전증의 중요한 한 원인이 됨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참고로 당시 뇌전증은 그리스 말로 morbus Herculeus(헤라클레스 병)라고 불리는데 그리스 신화에 보면 헤라클레스가 일시적으로 환청과 환시를 경험하면서 자기 자식들을 죽이는 장면이 있고, 이는 아마도 뇌전증발작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되어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4체액설에 근거하여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 예를 들면, 뇌졸중은 머리로 가는 혈관이 갑자기 막히는 현상이라고 봤고, 차가운 흑색 즙이 과다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였다.24 그래서 치료는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며, 발병 7일 이내에 열이 발생하면 이 과도하게 많은 차가운 체액이 따뜻해 지면서 회복이 시작된다고 생각했고, 열이 나지 않는 사람은 사망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혈관과 관련된 발병기전은 놀라울 정도의 인식을 보여주지만 치료와 관련해서는 의학적 오류다).
두부외상(Head trauma)에 있어서도 4체액설이 적용되었다. 두개골 골절이 개방형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큰 개방형 두개골절은 그대로 두도록 했고, 비개방형에 대해서는 구멍을 뚫도록 권고했다. 두개골에 외상을 입으면 피가 나서 배출되고 상대적으로 다른 체액들이 축적된다고 믿었다. 이렇게 과도해진 체액들이 해로운 농(pus)을 만들고 뇌에 영향을 미쳐 기능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서 바람직하지 않은 체액들이 빠져 나오게 하는 치료를 권장한 것이다.25 이러한 수술은 가능한 신속하게 시행하라고 했으며 중요 혈관들을 피하고, 얼마나 천천히 drilling을 해야 하는지 까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뇌막염과 같은 감염을 피하기 위해 수술용 기구들을 세분화해서 고안했다. 이러한 수술법은 실제로 많은 생명을 구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런 이유로 이 수술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다만 이렇게 구멍을 뚫는 일은 보조의가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시민들은 보통 노예나 외국인들에 육체노동을 맡기며 이들을 신뢰했고,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의사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여러 가지 약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어머니인 대자연의 힘으로 병이 낫기를 바랬다. 건강한 음식, 환경, 운동을 강조하여, 약이나 다른 시술은 보조적인 요법으로 여겼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의사의 역할은 어머니 대자연의 역할을 돕는 것이며, 언제 얼마만큼 환자에게 비자연적인 치료를 행할 것인가 판단하는 것이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해를 입지 않고 치료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잘 나와 있다. 근본적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치료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그리스 시민에게 적합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환자의 의료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해서 가난한 이들도 치료했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인간 부검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믿음으로는, 사람의 육신이 쉬지 못하면 영혼도 평온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신속하게 땅에 묻고 적절한 의식을 행해야 했다. 그래서 부검 대신에 전쟁터의 병사나 검투사를 관찰하고 그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 뼈나 내장이 드러날 때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도 환생을 믿고 채식주의를 고수했던 피타고라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동물 해부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그 뒤로 계속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B.C. 370)는 만물의 기원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구성요소, 즉 원자(atom)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슷한 시기에 유명한 철학자인 플라톤(Plato, B.C. 429~348)은 인간의 정신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곳에 있다고 하였다. 지성은 뇌에 있고, 감정과 공포는 심장에, 탐욕과 욕망의 뇌는 간이나 창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인간정신의 삼위일체(triune)설이라고 부른다. 이 삼위일체설에 근거하여 뇌가 발달한 사람은 지도자 계급에 어울리고 심장이 발달한 사람은 군인이, 장이 발달한 사람은 노동자에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정신이 각기 다른 장기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물론 틀린 이론이지만 인간 정신을 여러 부분으로 구분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체계적인 인간 해부

체계적인 인간 해부는 헤로필로스(Herophilus, B.C. 335~280)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헤로필로스는 ‘해부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간 해부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26-28 칼세돈에서 태어나 쭉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지 않았던 헤로필로스는 수백 개의 시체를 해부하였을 뿐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해부도 시행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참여하였던 마케도니아 장수로서 나중에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는 톨레미 1세(Ptolemy 1st, B.C. 366~283)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의학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갖는 동시에 본인의 업적을 남기기 위하여 헤로필로스에게 살아있는 죄수들을 해부용으로 제공하였다. 헤로필로스가 살아있는 죄수를 해부한 숫자가 600개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왕성한 해부로 인하여 헤로필로스와 동료인 에라시스트라투스는 후세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살자(butcher)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헤로필로스가 많은 해부를 체계적으로 시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아있는 죄수의 해부를 실제로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29 이러한 생체 해부의 기록은 2세기 그리스 사람인 셀수스(Celsus)의 문헌을 통해서만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셀수스가 헤로필로스보다 200년 후의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이 기록의 진위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톨레미 3세에 이르러서는 종교에 기울어지는 사회 분위기로 이러한 해부 연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실제적인 실험 정신을 강조한 헤로필로스는 시신경과 안구운동신경의 기능을 알아냈으며, 뇌척수액으로 차 있으면서 비어 있는 공간인 뇌실(ventricle of brain)을 인간 지성이 위치하는 곳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아마도 뇌실이 뇌 중앙에 위치하므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일 것이라는 추론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뇌에서 기원하며 혈액과 같이 움직이는 pneuma라고 불리는 물질이 신경전달을 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해부학 학교를 설립한 헤로필로스의 업적은 이 후 갈렌에게로 이어지며, 실제로 이 두 사람이 밝혀낸 해부학, 특히 신경해부학에 대한 업적은 오랜 세월 후 베살리우스가 나타날 때까지 별로 추가된 내용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였다.
헤로필로스의 동료인 에라시스트라투스(Erasistratue, B.C. 304~250)는 해부학자이자 시리아 니카토 1세의 왕실 의사였다(Fig. 5).30 헤로필로스와 더불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심장이 인지의 중심이 아니고 펌프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뇌의 구조물 중에서 대뇌와 소뇌를 구분하였고, 신경과 인대가 다른 것이며,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분리되어 있을 것으로 주장하였다. 매우 흥미롭게도 소뇌의 크기가 클수록 빨리 달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소뇌가 운동신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터무니 없는 가설은 아니라 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인간 지성이 존재하는 곳은 뇌실일 가능성이 있더라도 인간 대뇌의 복잡한 주름(convolution)의 정도가 지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또한 에라시스투라투스는 의사로서도 명성이 높았는데 안티오쿠스라는 청년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기운을 차리지 못할 때 한 아리따운 여인(사실은 의붓 어머니)이 방에 들어오자 환자의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보고 상사병(lovesickness)으로 진단하였다고 한다(Fig. 4).

심장인가 뇌인가

뇌가 육체의 중심이라는 주장은 히포크라테스가 사망한 뒤 더 힘을 얻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코끼리를 포함하여 총 49종의 동물 해부를 하고 관찰한 결과 심장은 스스로 뛰고 피를 담고 있는 반면 뇌는 취약하고 혈액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심장이 인간의 지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9 특히 뇌가 구불구불하게 주름이 많은 것(뇌 피질의 convolution)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뇌의 역할은 심장에서 발생하는 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라디에이터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영향으로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인간 지성의 중심이 뇌냐, 심장이냐의 대립구도가 이어지게 된다. 현재는 당연히 뇌가 인간 지성의 근원임을 알고 있으나, 여러 낱말들을 보면 과거의 심장근원설의 영향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 ‘가슴이 찢어지게 슬프다’, ‘가슴에 새기겠다’등이 그 예가 되겠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uthor contributions

All work was done by SKL.

Acknowledgements

None.

Fig. 1.
Artificially perforated skull. Incan skull brought by Ephraim George Squier.2,3
epilia-2019-00010f1.jpg
Fig. 2.
Edwin Smith Surgical Papyrus: The Academy Papyrus to be Exhibited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ress release).
epilia-2019-00010f2.jpg
Fig. 3.
Imhotep figure (Louvre Museum). The hieroglyph in left corner reads “Imhotep.”
epilia-2019-00010f3.jpg
Fig. 4.
Hippocrates (a conventionalized image in a Roman "portrait" bust, 19th-century engraving) and the cover of Hippocrates’ complete works (Hippocratic Corpus printed frame sold by Science Source).
epilia-2019-00010f4.jpg
Fig. 5.
Erasistratus, who worked actively as a great doctor, diagnosed Antiochus, who was a son of the King of Syria. He diagnosed Antiochus as lovesick after observing that Antiochus’ pulse became more rapid when Antiochus saw his step-mother Stratonice. According to the legend, the King of Syria allowed the union of his wife and son, to prevent him from dying of lovesickness.
epilia-2019-00010f5.jpg
Table 1.
Hippocrates’ theory of four humors
Substance Temperament Element Property Characteristics
Blood Sanguine Air Hot and moist Courage, hope
Yellow bile Choleric Fire Hot and dry Anger, ambition
Black bile Melancholic Earth Cold and dry Introversion, sentimentality
Phlegm Phlegmatic Water Cold and moist Serenity, calmness

References

1. Janssens PA. Paleopathology. London. UK: Curwen Press, 1970.

2. Squier EG. Peru: Incidents of Travel and Exploration in the Land of the Incas. London: Macmillan and Co, 1987.

3. Finger S, Fernando HR. E. George Squier and the Discovery of Cranial Trepanation: A Landmark in the History of Surgery and Ancient Medicine. J of History of Medicine 2001;56:353–381.
crossref pdf
4. Horne JF. Trephining in Its Ancient and Modern Aspect. London: John Bale and Sons, 1894.

5. O’Connor DC, Walker AE. Prologue. In: Walker Ae. A History of Neurological Surgery. New York. US: Hafner, 1967:1–22.

6. Trelles JO. Cranial trepanation in ancient Peru. World Neurology 1962;3:538–545.
pmid
7. Broca P. Remarks on the seat of the faculty of language followed by an observation of aphemia. In: Von Bonnin G. Some Papers on the Cerebral Cortex. Springfield, 1861.

8. Clower W, Finger S. Discovering Trepanation: The Contribution of Paul Broca. Neurosurgery 2001;49:1417–1426.
crossref pmid pdf
9. Finger S. Origins of Neuroscience.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10. Gross CG. A Hole in the Head: More Tales in the History of Neuroscience. Cambridge, MA: MIT Press, 2009.

11. Horseley V. Brain surgery in the Stone Age. Br Med J 1887;582–587.

12. Horseley V. Trephining in the Neolithic period. J Anthropol Inst G Brit Ire 1888;100–106.
crossref
13. Horseley V. The function of the so-called motor area of the brain. Br Med J 1909;2:125–132.

14. Marshall C. Surgery of epilepsy and major disorders. In: Walker AE. A History of Neurological Surgery. New York: Hafner, 1967.

15. Breasted JH. The Edwin Smith Surgical Papyru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30.

16. Hurry JB. Imhotep. Humphrey Mil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26.

17. Andrews C. Egyptian Mummie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18. David R. Mysteries of the Mummies: The Story of the Manchester University Investigation. London: Book Club Associates, 1978.

19. Finger S. Hippocrates: The Brain as the Organ of Mind. In: Minds behind the Brai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21–38.

20. Bettmann O. A Pictorial History of Medicine. Springfield, IL: Charles C Thomas, 1979:18–19.

21. Sigerist HE. A History of Medicine, vol. 2: Early Greek, Hindu, and Persian Medicin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1:44–79.

22. Majno G. The Healing Hand.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

23. Hippocrates. In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vol.10. Chicago: Wm. Benton, 1952.

24. O’Leary J, Goldring S. Epilepsy over the millennium. In: Science and Epilepsy. New York: Raven Press, 1976:15–34.

25. Clarke E. Apoplexy in the Hippocratic writings. Bull Hist Med 1963;37:301–314.
pmid
26. Thompson CJS. The evolution and development of surgical instruments. Br J Surg 1938;25:726–734.
crossref
27. Mettler CC. History of Medicine. Philadelphia PA: Blakiston, 1947.

28. Wright J. A medical essay on the Timaeus. Annals of Medical History 1925;7:117–127.

29. Dobson JF. Herophilus of Alexandria. Proc R Soc Med 1925;18:19–32.
crossref
30. von Staden H. Herophilus and the Art of Medicine in Early Alexandria.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31. Ganz J. Herophilus and vivisection: a re-appraisal. History of Medicine 2014;4:5–12.
crossref
32. Dobson JF. Erasistratus. Proc R Soc Med 1927;20:825–832.
crossref pmid pmc
TOOLS
Share :
Facebook Twitter Linked In Google+ Line it
METRICS Graph View
  • 0 Crossref
  •    
  • 350 View
  • 46 Download
Related articles in Epilia: Epilepsy Commun


ABOUT
ARTICLE CATEGORY

Browse all articles >

BROWSE ARTICLES
EDITORIAL POLICY
AUTHOR INFORMATION
Editorial Office
Department of Neurology, Keimyung University Dongsan Medical Center
1035, Dalgubeol-daero, Dalseo-gu, Daegu 42601, Korea
Tel: +82-53-258-4376    Fax: +82-53-258-4380    E-mail: epilia.journal@gmail.com                

Copyright © 2019 by Korean Clinical Epilepsy Research Society.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in M2community

Close layer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