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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1(1); 2019 > Article
투병이 선물한 삶의 진리
2014년 4월 6일 오전 10시 56분.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분만실 조명은 은은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습니다. 4시간의 진통이 끝났습니다. 클래식 음악 위로 아기 울음소리가 퍼졌습니다.
“2.94kg 남자 아기입니다. 손가락 발가락 다섯 개 확인하시고요......”
잠깐 정신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간호사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남편은 간호사와 함께 아기를 확인했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눈물을 훔쳤다고 했습니다. 간호사는 아기를 안고 제게 왔습니다. 언제 울었냐는 듯 조용한 아기.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태지를 뒤집어 쓴 날것 그대로의 생명이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복 단추 두 개를 풀고 아기를 제게 내려놓았습니다. 한 번도 세상에 닿은 적 없는 아기의 살이 제 가슴에 닿는 순간은 최고의 감동이었습니다.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도 만져보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땀에 젖고 거칠어진 제 손이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에 흠집을 낼 것 같았거든요. 손이 닿을 듯 말 듯 아기의 살결을 살짝 스쳤습니다. 좀 더 안아보고 싶었지만 아기는 신생아실로 향했습니다.
아기도 가고, 의료진도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간 분만실. 갑자기 잊고 있던 아픔이 되살아났습니다. 이가 딱딱 부딪히며 온몸에 한기가 돌았습니다. 창밖에는 벚꽃이 흩날리는데 따뜻한 봄날이었지만 분만실은 얼음장같이 추웠습니다. 아기와 스킨십을 하는 동안 고통도 잊게 해주는 강력한 마법이었습니다. 그렇게 마법처럼, 창현이가 제 곁으로 왔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잊지 못할 감동의 만남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만삭에 가까워져 갈 때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그때가 좋을 때야. 걸어 다니는 것보다 기어 다니는 게 낫고, 기어 다니는 것보다 누워 있는 게 나아. 누워 있는 것보다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낫지.”
매일 밤 위산이 역류해 앉은 채로 자야 했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척추 뼈를 압박하면서 요통이 찾아와 밤새 뒤척였습니다. 저는 어서 아기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홀가분해지고 싶은데 어른들은 뱃속에 있을 때가 좋다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모르시기 때문에 쉽게 하는 말씀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웬걸.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니 정말로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이라는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치우고 돌아서면 집은 다시 엉망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제 가슴 위에서 엎드려 자야만 잠이 드는 아이. 아이도 나도 가슴은 땀띠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출근하는 남편을 쏘아보았고, 하루 종일 시계만 바라보았죠.
‘애 보느니 밭 매러 간다.’는 속담이 있지요. 예나 지금이나 애 보는 일은 쉽지 않은가 봅니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이를 웃으며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은 방긋 웃는 아이의 미소였습니다. 입가가 엉망이 된 줄도 모르고 이유식을 받아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창현이는 거기에 더해 정말 영특했습니다. 아기 때부터 책장 앞에서 2시간은 거뜬하게 앉아 책을 보았습니다. 책을 읽어주면 책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했습니다. 손짓발짓 해가며 옹알거리는 모습에 우리 아이는 영재가 틀림없다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숫자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숫자를 읽던 날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이면 새로 나온 유아 전집 정보를 찾았습니다. 괜찮은 영유아 학습지는 없는지, 인터넷 맘카페를 뒤적이며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배움에 목말라 할 때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학습지 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을 잘 따랐고 즐거워했습니다. 이대로만 커준다면 영특하고 멋진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엄친아가 우리 집에서 태어난 것 같아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당연하죠. 내 아이는 꽃길만 걸을 테니까요.
그 날은 가족끼리 지리산으로 첫 여행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맞이하는 첫 여행이라 저도 무척 설렜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이 이마(당시 생후 15개월)에 37.8℃의 미열이 있었습니다. 전날 에어컨을 세게 쏘인 탓일까요. 여행을 취소할지 고민이 되었죠. 취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아직도 그 때의 고민을 후회하긴 합니다. 꼭 그 탓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상비약을 구비해 일정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아이는 열이 내렸습니다. 걱정을 잊고 계곡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바비큐를 즐기고 멋진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일찍 일어났습니다. 남편과 함께 셋이서 펜션 근처를 산책했습니다. 청소를 마친 수영장에는 펜션 주인이 깨끗한 지리산 산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서 튜브 탈 생각에 폴짝폴짝 뛰다 넘어졌습니다. 아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아이의 이마가 어깨에 닿았습니다. 어깨에 열감이 느껴졌습니다.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재보니 40도에 가까웠습니다. 근처 의원으로 갈 채비를 하는데, 아이의 온몸이 뻣뻣해지고, 눈동자가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입에서 거품이 나왔습니다. 처음 마주한 모습에 아이를 안은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다행이 아이는 금방 깨어났습니다. 진료를 받으니 단순 감기라고 했습니다.
“약 먹으면 열 내리고 괜찮아 질 겁니다. 갑자기 열이 올라 경기1)를 할 수 있습니다. 열성경련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듣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듣고 나와 약을 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두 번 더 경기를 했습니다. 양상도 같았지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 당장 집에 갈 짐을 챙겼습니다. 그 많은 2박 3일 여행 짐을 어떻게 챙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안타까웠는지 펜션 주인은 하루치 숙박비를 환불해주면서 우리를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지리산에서 창원으로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평소 폐렴을 자주 앓던 터라, 종종 찾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또 경기를 하면 다음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의 경기는 멈췄습니다. 폐렴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진료 당시 교수님이 잠깐 뇌전증 이야기를 꺼내실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럼요. 우리 아이가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없죠. 그렇게 믿었습니다. 단 한 번의 해프닝으로 추억하며 1년을 지냈습니다. 어쩌면 경고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1년이 흘렀습니다.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하면 폐렴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종종 입원을 하곤 했죠. 그 날도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아침에 담당 교수님을 찾았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는 말은 폐렴일 확률이 90%입니다. 역시 폐렴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고민했습니다.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고민하는 교수님께 얼른 말했습니다.
“둘째가 있어서 입원하기가 힘들어요. 통원치료 할게요. 이상하면 바로 병원 올게요.”
교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대신 수액 하나를 처방해 주셨지요. 수액을 맞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잘 놀았습니다. 열도 내렸고요. 어린이 집에 그냥 다시 보냈어야 했나 하는 농담까지 하면서 말이죠.
저녁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고,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던 창현이가 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물컵에 물을 따라주었습니다. 물을 마시려던 창현이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뻣뻣해졌습니다. 물컵은 날아갔고 사방으로 물이 튀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으로 전화했습니다. 교수님은 진료를 마감했지만 우리를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1년 전 교수님이 끄집어내던 말이 교차되면서 두려웠습니다.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서둘러 입원했습니다. 입원치료가 즉각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의 폐렴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폐렴이 급성으로 진행되었던 모양입니다. 열도 내리고 기침도 잦아들었지만 경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수시로 계단을 뛰어 올라왔습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지켜볼지,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진단을 받아볼지 말이죠.”
교수님이 나가고 남편과 나는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는 걸까.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숨기려고 애를 쓸수록 소문은 더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슴 아파할수록 저는 더 괴로워졌습니다.
한두 번 들었거나 본 적이 있는,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무수한 치료법들을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점집, 철학관 같은 주술적 방법부터 동네에서 바늘 하나로 치료했다는 아무개 할머니, 부작용이 없고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한의원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대의 치료법이 위험하고, 부작용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낫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어떤 방법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낫기만 한다면, 나을 수만 있다면.
오직 낫게 만들겠다는 집착이 이성적인 판단도 마비시켜 버린 것이지요. 또한 그들이 말한 치료법이 시작되면 아이가 잠깐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미련을 놓지 못하고 속고 또 속는 악순환을 반복 했습니다.
경기가 찾아오는 밤이면 저는 아이 위에 올라타서 바늘을 찔렀습니다. 유명한 한의원에서 권장한 방법이었지요. 아이는 경기가 끝이 나서 기진맥진 했다가 바늘에 놀라 번쩍 눈을 뜬 적도 있습니다. 한의사는 깨어 있을 때도 자극을 주면 경기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바늘을 보고 겁을 먹은 아이가 바지에 오줌을 싸고 온 몸으로 저항을 했습니다. 저는 머뭇거릴 수가 없었습니다. 낫기만 한다면 지금의 고통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으니까요. 팔에는 링거 흉터가, 손가락 발가락 끝에는 바늘 흉터가 남았습니다. 바늘 요법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늘을 찌르는 행위가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수시로 찌르는 아픔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저는 왜 아이의 마음을 먼저 달래지 못했을까요. 두려움에 부릅뜬 아이의 두 눈은 아직도 제 마음 한 쪽에 남아 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두눈을 부릅뜬 아이의 두려움과 공포감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2)
결국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3)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벚꽃이 봄바람을 타고 곳곳에 흩날렸습니다. 분홍빛 얇은 꽃잎 5장이 모여 꽃이 되고, 그 꽃들이 모여 풍성한 나무를 만드는 장관이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은 겨울이었습니다. 길가에 벚나무는 아름다웠던 봄을 뒤로하고 휑하니 가지만 남았습니다. 벚나무는 추위를 견디고서 봄을 맞겠지요. 우리에게 벚꽃이 흩날리는 풍광을 다시 선물하겠지요. 여름이 오면 꽃을 버리고, 가을이 오면 이파리를 버리고, 새 삶을 준비할 것입니다. 한 계절을 준비해 피운 꽃과 이파리가 속절없이 떨어지는 일이 가슴 아프겠지만 그냥 그 자리를 지키며 다음 해를 준비하는 벚나무. 저는 이제 벚나무의 마음을 닮아가려 합니다. 아이는 아직도 투병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수시로 피운 꽃을 떨어뜨려야 하고, 이파리를 잘라내는 아픔을 견뎌야 합니다. 떨어지는 꽃과 이파리가 아쉬워 울고 자책하며 원망한다면 다음 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나는 더 이상 떨어지는 순간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금을 살고 다음을 준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울고 원망하는 가족과 환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에 잘잘못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터널을 통과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바라봐주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그들의 나무에도 벚꽃이 흩날리는 풍광이 펼쳐지는 날이 오길.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NOTES

1) ‘경기’는 ‘seizure’를 의미하며 ‘발작’으로 공식 표기한다.

2) 바늘(침)요법 외에도 한약요법, 개명, 천도재, 조상묘 이전, 굿 등 다양한 민간요법을 시행했다.

3) 개발중인 항경련제(프레가발린) 임상시험, 케톤식이요법, 비급여 약물복용 등의 항뇌전증치료를 진행했으나 발작 억제가 되지 않았다. 치료기간 동안 사용 가능한 항경련제를 거의 복용했다. 부작용으로는 스티븐존슨증후군이 의심되는 피부발진, 간수치 초과가 있었다. 최대 7가지 복용하던 항경련제는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의심되는 경우를 제하고 4가지로 복용 중이다. 발작횟수는 초기 발병에 비하면 50%이상 줄었으나 여전히 발작(수면 중 대발작)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 날 잘 넘어지거나 비틀거리는 보행의 어려움, 또래보다 인지발달이 늦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뇌수술을 고려할 수 있으나 발작 범위가 산발적으로 불가하다. 따라서 현재 미주신경자극술을 고려하고 있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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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work was done by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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